세상에 쓰여진 모든 글은 일방적인 통보다. 닿을 수 없는 상대방을 해석하는 것 또한 내겐 또다른 영감을 찾는 일이다. 통보 속의 회환. 두려움. 슬픔. 가끔은 환희. 창공 너머로 흩어진 무수한 소리를 하나씩 그러모아 나 좋을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그나마 근접한 답을 찾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어제의 내가, 또 이제는 일주일 전의 내가 어떠한 답을 찾아 헤맸는...
커피와 시집. 6PM의 재즈. 인문학. 소양. 그리고 오 년 전으로부터 미확인된 메시지. 미수신 상태의 공백과 함선. 해저를 웃돌던 꿈의 편린. 그 모든 것이 한 데 뒤섞인 답신, 그 또한 미발신 -
똑똑. 여보시오. 자네는 누구인가. 어느 겨울 밤엔 문득 못 참고 소리를 질러보았네. 똑똑. 여보시오. 자네는 누구의 소리인가. 귀를 비비고 들어봐도 좀처럼 사람 말이 없네. 아, 정말 내 형체 없는 몸뚱아리만이 이 속 넓은 친구와 한몸이 된 것인가. 똑똑. 여보시오. 자네, 대체 무얼 찾는가? 도대체 무얼 잃었길래 그리도 구슬픈 소리로 온 인생을 두드리는...
멀다, 그러니까 여기로부터 약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다. 봄이 와도 꽃이 피지 않는 어느 산 중턱 언저리에서. 해가 뜨건, 달이 뜨건 누구에게도 감상이 되지 못 하던 하늘을 바라보며. 연탄의 그을림과 꺼질 듯 말듯 한 촛불 사이로 기다림은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지나도 여상하게 규칙적인 네모들...
바다 위를 걸었다. 일렁이는 물의 표면을 걸었다는 말이다. 파도가 칠 때면 내 살덩이가 같이 튀어올랐다. 구불거리는 시야에 멀미가 났지만 도무지 육지로 내딛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난 계속해서 육지와 멀어지려 찰박한 물 위에 발을 얹었다. 한 발, 뛰어오를 때마다 내 두 다리는 볼품없이 흔들거렸다. 두 발, 떨어질 때마다 내 두 팔은 날기라도 하려는 듯 허...
살결에 감겨오는 차가운 천쪼가리 하나로 여름이 여름인 줄도 모르는 아이에게, 한 노인이 물었다. 아이는 차가운 욕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이상하게도 아이의 납작하게 눌린 벌건 이마와 움푹 패인 눈 밑이 소름 끼칠 만큼 싫지는 않았다. 아이는 노인의 질문에 대답 대신,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수족관 물고기들처럼 뻐끔거렸다. 그 뻐...
소이에게, 어쩜 그리 욕심이 많은지 온 세상의 색을 다 가져간 듯 먹먹하고 새까맣게 구불거리던 긴 머리카락. 벌겋고 오밀조밀한 입술, 뭉뚝하고 말랑한 코. 도드라진 데 없이 밀려올라가는 볼 위에는 커튼이라도 친 듯 빛 샐 틈이 없던 눈동자. 검은자. 너의 밝지 않은 피부색과 걸맞게 아주 까맣고 탁했던 그 알맹이. 그 속에 무얼 담고 있는지 너 자신을 제외하...
간지러워. 추워. 더워. 네 사진을 보는 게 겁이 나. 내가 아니야.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나 오해하지 마. 배가 아파. 나 많이 아파. 졸려. 자고 싶어. 자고 싶지가 않아. 자야 돼. 무서워. 가위 눌리는 게 무서워. 악몽 꾸는 게. 네 꿈 꾸는 것도 무서워. 간지러워. 온몸이 간지러워. 더러워. 내가 더러운 것 같아. 네 말따라 역겨워. 춥고 더워. ...
"응, 요새 또 잠이 잘 안 와서. 자꾸 가위 눌리고 악몽 꾸고 그런다. 무서워서 밝을 때 자려고 아침에 자도. 커튼 살짝 열고 희미하게 들어오는 햇살 보고 자는 게 익숙해졌어. 아니, 원래도 익숙했는데 잠깐 몇 주는 밤에 잘 잤었거든." "몰라. 나도 잘 모르겠어. 딱히 별일은 없고 그냥 좀... 아무렇지 않은데 자꾸 그러니까 무서워." "응, 고마워. ...
B/ 저번 주에 비가 그렇게나 많이 오는지도 모르고 새로 산 운동화를 신고 나갔는데, 출근이 늦어서 많이 오는 걸 알고서도 다시 갈아신으러 집에 갈 시간이 없는 거야. 그래서 그냥 그 빗길을 새로 산 운동화를 신고 막 달렸지. 근데 비가 어찌나 많이 오던지, 운동화는 이미 다 젖어서 걸을 때마다 발에 물이 차오르는 느낌 알지? C/ 바보야. 다시 집 들어가...
A/ 밖에 눈이 와. 그것도 많이. 너랑 같이 보러 나가고 싶어. B/ 음, 나는 그냥 이렇게 이불 안에서 너랑 꿈틀대는 게 더 좋아. A/ 지금 나가면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있을 거야. 너 눈 좋아하잖아. B/ 그치. 그런데 지금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아. 나 너무 추워. A/ 아무도 밟지 않았던 새하얀 눈길 위를 뽀드득 소리내며 발자국 남긴다고 생각해봐....
난 영원해 더 이상 아무것도 믿지 않으니 두려울 것도 없고 상처 받을 일도 없을 거야 모든 것들은 언젠가 날 아프게 할 테니까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은 날 아프게 했고 내가 사랑할 모든 것들 또한 그렇겠지 난 그냥 여기 앉아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한 장씩 편지를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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