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는 일기와 편지를 쓰는 일을 좋아했고 중학교 때는 학교 수행 평가 날에 글을 썼다. 그러곤 따로 불려가서 선생님께 다정한 칭찬을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글을 쓰며 뿌듯함을 느꼈다. 글을 읽는 일은 정말 싫어했지만. 고등학교로 올라가서는 수행 평가를 위해서 내 감성을 팔고 내 과거를 팔았다. 내 가족사와 내 어린 날의 시간을 사실대로, 그러나 불쌍...
초록 조명 빛 아래로 먼지들이 춤을 추는 가게. 딸랑 소리와 함께 두 명의 손님이 들어왔다. 입구의 낮은 계단을 내려오는 그들은 말이 없고 계단의 커튼만이 그들의 걸음에 맞춰 잔잔하게 흔들린다. 로브를 걸친 단발의 여자와, 정장을 입은 짧은 머리의 여자. 그들의 오늘 이 술집의 첫 손님이다. 종소리를 듣고 주방으로 보이는 작은 문에서 30대로 보이는 사장이...
지금 당장 떠나야 한다면, 나는 제일 먼저 나의 허물을 벗어 걸어두고 샤워를 하겠다. 내 나약함을 주워담아, 쓰레기통에 털어버리고 무거운 주제들은 하수구에 흘려보낸 뒤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 곳을 떠나겠지. 당신이 지금 당장 떠나야 한다면, 내 생각 한 번은 해주오.
아직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것이 넘쳐흐르는데, 지금의 나는 모든 것을 알게 된 것만 같다. 시간은 절대 머무르지 않으며, 행복은 영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울은 영원하다고 생각했던 나. 나를 계속해서 심해로 빠트리던 그 아이를 드디어 내가 빠트렸다. 나를 머리에서부터 짓누르며 숨도 못 쉬게 했던 그 아이를 이젠 내가 발 밑에 두게 되었다. 그 아이는...
"야, 그러니까 힘들 때 나쁜 생각하지 말고 꼭 연락해라. 내가 옆에 없는데 연락도 잘 못 해서, 혹시라도 네가 어떻게 될까 봐 너무 걱정된다." 나에게는 친오빠로 여기는 친한 오빠가 있다. 군대에 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동기들과 선임들과 휴가를 나와 술에 잔뜩 취해 저 말만 몇 번을 반복하는 건지. 처음에는 멀리서도 나를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에 고맙게만 ...
나는 내 머리카락이 너무나 빨리 자라 평생을 감당하기 힘들 줄 알았는데, 어느덧 느리게 자라고 있더라. 나는 내 평생 고등학생 시절의 전부였던 신림을 사랑할 줄 알았는데, 이제 진절머리가 나더라. 난 정말 죽고 싶었는데, 왜 지금은 간절히 살고 싶은지. 너희는 언제나 내 옆에서 늙어갈 줄 알았는데, 이제는 아무도 마주치기 싫은 사이가 되었는지. 이상하다, ...
저, 분명 날고 있었잖아요. 근데 왜 숨이 안 쉬어져요? 그때 저를 바다 속에서 꺼내줬잖아요. 다정한 목소리로 높은 곳으로 날아가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대체 또 왜, 다시 물 속인 걸요? 아무것도 안 보이고 숨이 막혀와요. 너무 어둡고 무서워요. 해초로 몸을 감추고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래요. 감당할 수 없다면, 함부러 나를 꺼내지 마요. 가장 높은 ...
나는 죽을 준비를 다 마쳤다. 페이스북도 비활성화 했고 유서도 썼다. 마지막으로 엄마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었다. "엄마, 나 사랑해?" "그럼, 사랑 안 하면 어떻게 사냐, 식구인데." "맨날 못된 짓만 하는데 왜 사랑해?" "네가 바보라서. 정신 차려야지. 엄마를 위해서 정신 차려. 엄마는 이제 점점 힘이 없어. 네가 엄마를 지켜주지 않을 거야?" 엄마...
나는 네가 잠들 때 차가운 손으로 너의 발목을 잡고 놀래킬 거야. 나는 네 방 구석에 숨어 너를 내려다 볼 거야. 나는 너를 화장실에 가두고 조롱할 거야. 나는 네 꿈에 나타나 너를 괴롭힐 거야. 나는 너를 따라다니며 너를 지켜볼 거야. 네가 아무리 숨어도 너를 따라다닐 거야. 왜? 너는 그녀의 상상일 뿐이야.
문득, 떠나간 모든 것들에 입맞춤을 하지 못 한 어렸을 나의 공허함이 차오른다. 언제부턴가 생겨버린 다한증에 쭈글쭈글해져가는 책을 놓지 못 하는 나는 미련하다.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린 오늘, 또 어제. 이불을 꼭 쥐고 노래를 불러보던 그날의 기억들이 불이 꺼진 방으로 찾아오면 다시 들리는 빗소리. 왜 그리 매정하게 돌아서냐고 물어도 대답은 빗소리 뿐.
외로워 팔을 벌리면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우리의 짧은 만남 속엔 무엇도 없었다. 그럼에도 떠나간 곳에 남은 공허한 마음에는, 외로워 팔을 벌리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더 낮은 단어들을 주워담아 하늘로 쏜다. 쏘아진 낮은 단어들은 날지도 못 하고 빠르게 다시 낮은 곳으로 떨어진다. 낮은 단어들은 멀리 가지도 못 한다. 낮은 단어들은 하수구를 기어다닌다. 기어다니다 이내 누군가의 담배 불에 지져 사라져버린다. 낮은 단어들의 삶, 낮은 단어들은 높은 곳으로 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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