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남기는 까닭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나의 생각에서 시작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남기는 모든 것들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는 부정하려 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인생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는 그저, 작은 방 안에서 홀로 글을 쓰는 걸지도 모릅니다.
병실의 오전, 교수님의 방문에 막 늦잠을 자다 깬 나는 교수님의 목소리를 환청마냥 귀에 꾸겨넣는다. 교수님의 목소리는 자꾸만 메아리치고 내 대답은 시작하기에 자꾸만 3초를 넘겼다. 그러나 교수님의 다음 말은 나를 번쩍 정신차리게 했다. "음, 여러 약을 다 써봤는데도 계속 꿈을 잘 기억하는 걸 보면 환자 분이 원래 그런 사람인 거예요. 약으로 어쩔 수가 없...
"구리다." 내 유일한 형제가 며칠 전, 'Luce in altis' 라는 문구를 팔에 찍어온 내게 처음 뱉은 말. 그래, 구린 거 나도 알아. 그래도 난 높은 곳에서 빛나고 싶어서. 나는 열일곱살 때부터 이 흔하디 흔한 문구를 존경했다. 그저 '높은 곳에서 빛나라' 라는 실없는 문장인데도 말이다. 이 실없는 문장은 실 없는 바늘처럼 달린 것도 없이 내 마...
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꼭, 그 앞에만 서면 내 입 속에 내 발이 묶여 이상하리만큼 한 음도 나오지 않고, 그가 아닌 다른 사람 앞에서는 여러 음들이 순서도 없이 입 안에 퍼져서 인어가 뱃사람을 홀리듯이 자유자재로 춤을 추게 돼.
새어져나오는 빨강에 곪아터진 노랑이 겹쳐질 때면 당신은 내 손을 잡아주었지요.
작년 여름. 나는 긴 머리를 치장하고 그는 옷매무새를 다듬어 서로가 마주했을 때, 나는 나의 입 속에 발이 묶여 아무 말을 던질 수 없었다. 그러나 또 다시 여름. 우리는 서로의 입 속에 허리를 꼿꼿하게 피고 앉아서 곪아 터져버려 쏟아지는 내 말들을 다 받아낼 수 없는 그.
고장난 세탁기 덕에, 일주일 간 입었던 옷을 손빨래 했다. 옷은 세제에 담겨 나올 때마다 각각의 색을 뿜어냈다. 초록 물, 누런 물, 까만 물. 그냥 옷에서 물이 빠지는 것 뿐인데 나는 궁금했다. 나에게도 물이 있을까? 빨래가 되어 나만의 색을 뿜어보고 싶었다. 내 물은 어떤 색일까, 우울한 파란색을 뿜을까, 달콤한 분홍색을 뿜을까. 아니면 아예 아무런 물...
요즘 꿈에는 자꾸만 누가 죽는다. 자꾸만, 자꾸만 누가 죽어서 꿈에서 다 같이 엉엉 울어버리고 만다 그 순간에 나는 자꾸 깬다. 또 다시 잠들면 이어지지만 꼭 그 순간에 나는 자꾸 깬다. 그럼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든다. 잠에 취해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가 없다가도 새하얀 천장을 보고 에어컨 소리를 듣고, 괜히 엄마를 불러 깨워도 보고 그럼 나는 아까 그게 ...
그에게 빌려주었던 내 제일 소중한 책을 수 개월 후에 돌려 받았다. 집에 와서 살펴본 책에는 여기 저기에 자국과 생채기가 나있었다. 꼭 내 마음 같이. 결국 읽어보기는 했냐는 내 말에 읽을 시간이 없었다는 그의 대답도, 내 마음을 받아줄 수 없었다는 것만 같다. 상처난 책은 내 마음과도 같아서 나도 더 이상 깨끗한 책이 필요 없어졌다.
나는 또 내 팔 이곳저곳을 깨물고 손톱으로 그어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언제까지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살아 봐야 내가 왜 태어났는지 알게 되겠지요. 우울감이 몰려와 나를 잠수시키면 나는 통제력을 잃어버립니다. 마음이 답답해서, 하늘에서 뛰어내리고만 싶어요. 풍덩, 바다에 빠져 아래로 내려가고 싶어요. 아니면, 우주로 멀리 날아가고 싶어요. 어린...
엄마, 그때 나는 분명 방 안에 있었는데 놀라서 현관문을 열고 내 이름을 부른 거예요? 옆에 있어야 할 내가 없으니까 사라진 줄 알았던 거예요? 엄마, 나 퇴원하고 거실에서 같이 자는 게 내가 죽을까 봐 그런 거예요? 그런데 엄마, 그래도 달라지는 게 없어요. 난 여전히 우울하고 불행하고 슬퍼요. 죽고 싶어요. 오늘은 너무 사라지기 딱 좋은 날이에요.
색색, 에어컨이 한숨을 내쉬고 있다. 색색, 엄마가 곤히 자고 있다. 색색, 선풍기마저 지지 않을 것처럼 숨을 쉰다. 나는 숨을 쉬기가 무서워 숨을 참고 있다. 색색, 숨을 쉴 때마다 내 샴푸 향기에 취해 몽롱해진다. 색색, 드라이기도 숨을 쉬어야 하는데 큰 소리가 무서워 나는 참고 있다. 나는 거꾸로 눕는다. 현관문에 정수리를 대고 인사를 한다. 너도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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